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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음식 탐구

고대 로마의 약선요리 –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의 식이요법

by 선식담 2025. 4. 21.

음식은 약이 될 수 있는가? 서양 의학의 조상들이 남긴 식사 철학에서 약선요리의 실마리를 찾다

서양 의학의 뿌리, '식이요법'에 있다

“Let food be thy medicine and medicine be thy food.”
–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이 유명한 말은 우리가 흔히 '서양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문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음식은 단순한 영양 섭취를 넘어, 치료와 회복의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그의 후계자 갈레노스(Galen)는 약 500여 종의 음식과 약재를 분류하며 병증별 식단을 체계화했고, 그 지식은 16세기까지 유럽 의학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가 말한 ‘식이요법’은 무엇이며, 오늘날 약선요리로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을까요?


히포크라테스의 음식 철학 – 체액설과 균형의 미학

고대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네 가지 체액, 즉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의 균형이 건강을 결정한다고 보았습니다. 각 체액은 성질에 따라 더운 것, 차가운 것, 습한 것, 건조한 것으로 나뉘며, 이 네 가지 속성을 가진 음식들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 더운 성질의 음식 – 체온을 높이고 활력을 더하는 식품

이 음식들은 대체로 혈액순환을 돕고 체내 열을 증가시키며, 냉증이나 소화 장애에 효과적이라 여겨졌습니다.

  • 마늘: 고대 로마 병사들은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마늘을 먹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항균, 항염 작용이 입증되어 면역 강화에 좋습니다.
  • 양파: 혈액순환을 촉진하며 따뜻한 성질로 몸의 기운을 북돋아줍니다.
  • 와인: 따뜻한 기질의 음료로, 혈관을 확장시켜 순환을 도우며 음식 소화를 촉진합니다.
  • 올리브유: 따뜻하고 윤기 있는 성질로, 장을 부드럽게 하고 염증 완화에도 효과적입니다.

  차가운 성질의 음식 – 과열된 몸을 식히는 자연의 처방

열이 많거나 염증이 있는 상태에는 차가운 성질의 음식이 처방되었습니다. 이들은 몸속 열을 내리고 진정 작용을 하며 해열, 이뇨 효과가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 오이: 수분 함량이 높고 차가운 성질로, 열을 내리고 갈증 해소에 좋습니다.
  • 레몬: 산미는 신체를 알칼리화하며, 진정 작용과 함께 간 해독을 돕습니다.
  • 식초: 해열 작용과 더불어 소화 기능을 조절합니다. 감염성 질환 후 회복식으로 활용됐습니다.

  습한 성질의 음식 – 건조한 몸에 윤기를 더하는 보습 식재료

몸이 건조하거나 음혈이 부족한 경우, 습한 성질의 음식으로 ‘수분을 보충’하는 식이요법이 사용되었습니다.

  • 우유: 보습 작용이 뛰어나며, 몸을 차분히 하고 영양을 보충하는 데 이상적입니다.
  • 멜론: 수분 함량이 매우 높고 해열, 이뇨 작용이 있어 여름철 체온 조절에 유리합니다.
  • 보리죽: 위장을 편안하게 하고 수분을 공급해 탈수나 열병 후 회복식으로 사용됐습니다.

  건조한 성질의 음식 – 몸 속 불필요한 습기를 걷어내다

습열이 많거나 체내 수분이 과잉된 경우, 건조한 성질의 음식으로 균형을 잡았습니다.

  • 렌틸콩: 건조한 기질을 지녀 위장의 습을 제거하고 소화를 돕습니다.
  • 빵(특히 구운 밀빵): 수분을 흡수하는 작용이 있어, 설사나 습열 체질에 도움을 줍니다.
  • 구운 고기: 익힘으로 인해 수분이 줄고 건조한 성질이 강해져 몸의 습기를 다스리는 데 쓰였습니다.

 

히포크라테스는 질환의 유형에 따라 이러한 음식을 조절하여 체액의 균형을 회복시키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어, 감기나 폐렴 같은 ‘차가운 질환’에는 마늘을 삶은 국물을 추천했고, 소화 장애에는 포도주에 절인 무화과를 권장했습니다.


갈레노스의 구체적 식이요법 – 약과 음식의 경계를 넘나들다

갈레노스는 히포크라테스의 체액설을 계승하면서도 더 정교한 분류를 시도했습니다. 그는 음식 하나하나에 대해 ‘온열, 냉각, 건조, 습윤’의 등급을 매기고, 특정 병증에 어떤 조리를 해야 하는지를 상세히 기술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다음과 같은 식이요법이 있습니다:

  • 열병 환자: 냉각성과 습윤성이 있는 보리수프
  • 소화불량: 생강과 포도주를 곁들인 구운 양고기
  • 기력이 떨어진 자: 꿀에 절인 대추와 무화과

특히 그는 음식의 조리 방식(삶기, 굽기, 훈제하기)에 따라 '체액을 조절하는 효과'가 달라진다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갈레노스는 현대의 영양 처방과 흡사한 방식으로 질환별 식단을 제안했습니다.


현대 영양학으로 재조명한 고대의 식이요법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의 식이요법은 과학적으로도 일리가 있습니다.

  • 마늘: 항균, 항염 효과. 면역력 강화. 현대에서는 알리신 성분이 세균을 억제하는 것으로 분석됨.
  • 올리브유: 단일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여 심혈관 건강에 이로움.
  • 보리: 섬유질이 풍부하고 혈당 지수(GI)가 낮아 당뇨병 식단에 적합.
  • : 항산화 및 상처 치유 효과. 과거에는 소독제로 사용되기도 했음.

갈레노스가 권한 ‘보리죽’은 오늘날로 치면 소화에 부담이 없는 저자극성 식사이며, ‘꿀에 절인 무화과’는 현대에도 간식 혹은 변비 예방용으로 추천되는 건강식품입니다.


약선요리로의 응용 – 로마의 식탁을 오늘로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의 철학을 토대로 한 현대식 약선요리를 몇 가지 소개합니다.

 

1. 보리와 마늘을 곁들인 올리브 보리죽

  • 기능: 위장 안정, 해열, 면역 강화
  • 재료: 보리쌀, 마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소금, 파슬리
  • 조리법: 보리를 푹 삶아 마늘과 함께 끓이고 올리브유로 마무리

2. 생강포도주 양고기찜

  • 기능: 체온 상승, 기력 회복
  • 재료: 양고기, 생강, 마른 포도, 적포도주, 로즈마리
  • 조리법: 포도주에 생강을 끓여 양고기를 저온 조리. 로즈마리 향 추가

3. 무화과와 꿀을 곁들인 요거트 디저트

  • 기능: 장 건강, 피부 미용
  • 재료: 무화과, 천연 꿀, 그릭 요거트, 견과류
  • 조리법: 무화과를 슬라이스해 꿀에 절이고 요거트에 얹어 서빙

약선 응용:

마늘과 올리브유를 활용한 보양 스튜는 겨울철 면역력 강화용 보양식으로 적합합니다.

▶ 더위에 지친 여름철, 레몬식초 드레싱을 얹은 오이 냉채는 해열 보양식으로 활용 가능합니다.

우유와 멜론을 함께 활용한 숙면 유도 스무디는 피부 건조와 피로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렌틸콩과 허브를 곁들인 구운 닭고기 샐러드는 습열 체질 완화와 영양 보강에 적합합니다. 


인문학적 시선 – 음식과 의학의 경계, 그 철학적 의미

고대 로마의 의사들이 “음식이 곧 약이다”라고 말한 이유는, 그들에게 치료란 몸속의 균형을 되찾는 일이었기 때문이에요. 병을 이겨내는 것이 전쟁처럼 싸우는 게 아니라, 몸과 자연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도록 돕는 것이었죠.

이런 생각은 오늘날의 약선요리, 즉 음식을 통해 건강을 다스리는 방법과도 잘 맞아요. 지금도 “건강은 식탁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자주 들리잖아요? 2,000년 전 사람들도 이미 음식이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 지혜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거예요.


결론 – 과거로부터 배우는 오늘의 식탁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가 말한 식이요법은 단순한 옛날 민간요법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들의 생각은 오늘날 의학과 영양학의 기본이 되었고, 약선요리를 만들 때에도 아주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어요.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라고 고민하는 건 결국 “어떻게 건강하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과 같죠.
그래서 고대 로마 사람들의 지혜를 지금 우리의 식탁에 되살리는 건, 단순히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의 건강을 더 잘 돌보기 위한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