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고기 애호가였던 성군
‘한글 창제’로 널리 알려진 세종대왕. 하지만 그의 또 다른 모습은 **“고기를 사랑한 조선의 미식가”**였다. 고기를 즐기며 왕실의 식탁에서 다양한 고기 요리를 직접 경험하고, 이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는 정치적 상징으로도 활용했던 세종대왕. 고기 사랑은 단순히 취향을 넘어, 당시 조선 왕실의 중요한 문화적 요소였다는 점에서 그의 식생활은 더욱 흥미롭다.
실록 속 기록, “돼지고기는 날마다 먹어도 좋다”
《세종실록》에는 흥미로운 한 문장이 등장합니다.
“돼지고기는 날마다 먹어도 좋다.”
이 짧고 단호한 한마디에서 우리는 세종대왕의 ‘고기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음식을 좋아했다는 차원을 넘어서, 고기 특히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즐겼던 세종대왕의 식습관은 그의 성격, 건강 상태, 심지어 정치적 성향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 됩니다.
세종은 실제로 사냥을 즐기며 직접 잡은 고기로 요리를 해 먹는 일을 자주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식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는데요. 왕이 몸소 나서서 고기를 잡고 이를 함께 나누는 행위는 왕실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신하들과의 거리감을 줄이는 동시에, ‘강한 왕’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정치적 상징으로 작용했습니다.
사냥도 직접! 진짜 ‘고기 러버’ 인증한 세종대왕
보통 세종대왕 하면 학문에 몰두한 조용한 학자 군주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꽤 활동적이고 실용적인 리더였습니다. 그는 활쏘기, 말타기, 사냥 등 신체 활동도 적극적으로 즐겼습니다. 특히 사냥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왕으로서 체력과 무예를 단련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죠.
사냥의 목적은 다양했습니다. 당시 농경 사회였던 조선에서 사슴이나 멧돼지 같은 동물들은 농작물을 해치는 존재였기 때문에, 이들의 개체 수를 조절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왕이 직접 활을 쏘고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신하들에게 강한 리더십을 과시하는 의례적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사냥 후에는 왕실 잔치가 열렸습니다. 직접 잡은 고기를 조리해 신하들과 나누는 이 잔치는 단순한 식사가 아닌, 왕권의 상징이자 신하들과의 친목 도모, 권력의 나눔이 이뤄지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이처럼 고기를 중심으로 한 식사와 사냥은 세종대왕의 정치와 문화 전략에서 중요한 축을 이뤘습니다.
조선 왕실의 식탁에 고기가 빠질 수 없는 이유
조선 시대 왕실의 식탁에서 고기는 단순한 영양 보충용 식재료가 아니었습니다. 제사, 연회,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의 상차림에는 반드시 고기 요리가 포함됐습니다.
대표적인 왕실 요리로는 수육, 불고기, 갈비찜 등이 있었으며, 이는 조선 시대 상류층 식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메뉴였습니다. 특히 육류는 잔칫상의 격을 높이는 핵심 음식이었고, 이를 준비하고 대접하는 것은 왕실의 위엄을 드러내는 중요한 예식의 일부였습니다.
세종대왕은 신하들에게도 종종 고기를 하사하며, 음식을 통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고기는 곧 힘이며, 풍요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이를 나눈다는 것은 곧 신하들에 대한 신뢰와 포용을 표현하는 정치적 제스처였습니다.
고기를 사랑했지만, 건강도 중요했던 지혜로운 왕
세종대왕은 평생 건강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말년에는 눈병과 통풍 등 다양한 질환으로 고생한 기록이 실록 곳곳에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무턱대고 고기를 먹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병세가 심해질 때면 죽, 채소 위주의 식단으로 식습관을 조절하며 건강 관리를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의 식이요법이었으며, 단순히 ‘편식’하거나 ‘고기만 고집하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음식에 있어 절제와 조화를 중시했고, 신하들에게도 이를 강조했습니다. 이는 고기를 좋아하되 자기 몸 상태를 잘 알고 균형을 맞췄던, 매우 지혜로운 군주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며 – 세종대왕, 조선판 미식가이자 전략가
세종대왕의 식생활은 단순히 미식의 차원을 넘어서, 조선 왕실의 문화, 정치, 건강관, 인간관계 등 여러 면을 포괄하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고기는 단순한 음식이 아닌 왕의 권위, 국가의 풍요, 정치적 유대감을 상징하는 매개체였습니다. 사냥과 잔치는 백성과 신하들, 그리고 왕실 내의 단합을 위한 하나의 퍼포먼스였고, 고기를 통해 나누는 공감과 메시지는 실로 전략적인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학문과 과학의 군주로 널리 알려진 세종이지만, 그의 식탁을 보면 섬세한 감각, 건강에 대한 통찰, 음식에 담긴 상징의 힘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는 조선판 ‘미식가’ 이상의, 음식으로 문화를 다스린 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역사 속 음식 탐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본초강목 1편: “조선판 식품 백과사전?! 이시진은 약학계의 백종원이었다” (0) | 2025.04.10 |
---|---|
역사 속 염증 치료법과 현대의 인기 치료법 (0) | 2025.04.09 |
신라 화랑의 단백질 섭취 비법은? – 고대 전사들의 체력 관리 식단 (0) | 2025.04.09 |
고대 중국 황제들이 즐겨 먹던 약선요리 – 황실의 건강 비밀 (0) | 2025.04.09 |
전통차 종류와 효능 정리 – 몸에 맞는 차 고르기 (0) | 2025.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