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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음식 탐구

중세 영국 왕실의 향신료 보관실 – 후추·생강은 건강약

by 선식담 2025. 4. 24.

향신료는 ‘약과 음식의 중간’,

귀족만이 소유할 수 있었던 보물이었다.

1. 향신료는 왜 ‘보관실’에서 지켜졌을까?

중세 영국, 특히 14세기 이후의 왕실과 귀족 사회에서는 ‘향신료 보관실(Spicery)’이라는 독립된 공간이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요리 재료를 보관하는 창고가 아닌, 귀한 약재이자 사치품인 향신료를 철저히 관리하는 공간이었죠.

대표적인 향신료였던 후추와 생강, 계피, 정향 등은 대부분 아시아에서 수입되었으며, 당시 금보다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후추 한 봉지는 말 한 마리 값과 같았고, 생강은 결혼지참금으로 주고받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중세 영국에서는 향신료를 단순한 ‘맛내기’용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의약품이자 생명을 지키는 보양 재료로 인식되었던 것이죠.


2. 후추와 생강 – 중세의 슈퍼푸드

후추 – 몸을 따뜻하게 하는 열성 약재

후추는 중세 영국에서 가장 귀한 향신료 중 하나였으며, 열성 약재로 분류되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차가운 기후와 육류 위주의 식단이었기에 후추는 음식의 부패를 늦추고, 위장을 자극하여 소화를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차가운 환경에서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효과가 매우 중요했죠. 

중세 의서에는 후추가 감기 예방체내 독소 제거에 탁월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왕실과 귀족은 체온을 유지하고 면역력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특히 후추는 감기나 독감 같은 전염병이 돌던 시기에 귀한 약재로 쓰였으며, 장기적인 건강 유지와 체력 보강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후추를 주로 음식의 맛을 내는 조미료로 사용하지만, 후추의 소화 촉진과 항염 효과는 현재에도 다양한 건강식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생강 – 여러 질병에 효과적인 자연의 치료제

생강은 중세 영국에서 후추와 함께 사용된 또 다른 중요한 향신료였습니다. 그 효능은 단순히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생강소화 촉진, 복통 완화, 감기 예방 등 여러 질병에 사용됐으며, 특히 여성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왕실 여성들이 출산 후 회복하거나 생리통을 완화하기 위해 생강을 자주 사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생강은 체온을 높여주는 성질이 있어 차가운 날씨에서 몸을 보호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진저롤과 같은 항염 성분이 있어 염증을 완화하고, 면역력 강화에도 효과적입니다. 중세 시대의 왕실에서 생강은 약방의 감초처럼 다양한 의약적 목적뿐만 아니라, 회복과 체력 증진을 위한 필수적인 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향신료는 음식과 약을 구분 짓기 어려운 시절에서 자연스럽게 건강의 비밀을 담고 있는 존재였습니다.


3. 현대 영양학으로 본 향신료의 가치

현대 과학은 중세의 지혜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당시 왕실이 향신료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재료로 사용한 것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효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후추

  • 후추에는 피페린이라는 활성 성분이 있어 생리 활성 물질로, 소화 효소의 분비를 촉진하고, 체내 영양소 흡수율을 높여주는 작용을 합니다. 특히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의 흡수를 높여 소화 기능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을 주며, 이는 소화불량이나 위장 장애가 있을 때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 또한, 후추는 커큐민(강황)과 함께 복용했을 때 항산화 효과가 증폭됩니다. 커큐민은 강황에 포함된 항염증 물질로, 항산화와 항염증 효과가 탁월한 성분입니다. 피페린이 커큐민의 체내 흡수율을 높여주기 때문에, 이 두 성분을 함께 복용하면 항산화 작용이 배가되어 노화 방지염증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생강

  • 생강은 진저롤과 쇼가올이라는 두 가지 주요 항염 성분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진저롤은 생강의 주된 활성 성분으로, 염증을 완화하고 통증을 조절하는 데 뛰어난 효과를 보입니다. 이는 류머티즘이나 관절염, 근육통 등 염증성 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매우 유효하며, 또한 면역 체계를 강화하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 쇼가올은 생강이 건조되거나 가열되었을 때 생성되는 성분으로, 진저롤보다 강력한 항염 효과를 발휘합니다. 또한, 혈액 순환을 개선하고 체내 열을 증진시켜, 차가운 기후에서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중세 왕실에서는 생강을 여성 건강을 위한 회복식으로도 활용했는데, 특히 생리통 완화, 출산 후 회복, 소화 장애 개선 등에서 큰 효과를 봤습니다.

즉, 중세 왕실이 귀하게 여긴 이유는 미각의 만족뿐 아니라, 건강 수호에 대한 실제적 효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두 향신료는 현대인들의 건강 유지와 질병 예방을 위한 중요한 재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약선요리와 같은 전통적인 요리에서도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핵심 재료로 계속해서 쓰이고 있습니다.


4. 인문학적 시선 – 향신료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향신료는 단순한 요리 재료가 아닌, 사회적 위계와 문명의 수준을 드러내는 지표였습니다.
후추나 사프란 같은 귀한 향신료는 왕실과 귀족들의 식탁에서만 볼 수 있었고, 화려한 향과 색으로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이 됐습니다.

또한 종교적으로도 향신료는 정화와 의식의 상징이었습니다. 성당에서는 유향과 몰약을 태워 공기를 정화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왕실 연회에서는 음식에 정향과 계피를 음식 위에 뿌려 고급스러움을 더했죠. 이처럼 향신료의 진한 향기는 곧 권력과 신성함의 상징이었습니다.


5. 약선요리로의 응용 – 지금 우리의 밥상으로

향신료는 지금도 약선요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음은 후추와 생강을 활용한 대표적인 응용 예시입니다:

 

후추 생강차

효능: 몸을 따뜻하게 해 감기·몸살 전조 완화 · 면역력 증강

재료 (1인분)

  • 생강 10g(얇게 저민 것)
  • 통후추 2~3알 또는 굵게 분쇄한 후추 ¼작은술
  • 물 300ml
  • 꿀 또는 메이플 시럽 1~2작은술 (기호에 따라)
  • 대추 1~2개 (선택)

만드는 법

  1. 생강 손질: 생강은 깨끗이 씻어 껍질째 얇게 저며 준비합니다. 껍질이 두꺼운 경우 솔로 문질러 헹군 뒤 사용해도 좋습니다.
  2. 우림: 냄비에 물과 생강, 통후추를 함께 넣고 중불에서 5분간 끓입니다. 이후 약불로 줄여 5분 더 우려 향과 성분을 충분히 추출합니다.
  3. 걸러내기: 차망으로 건더기를 걸러낸 뒤 찻잔에 따라냅니다.
  4. 보완 재료 추가: 꿀을 녹이고, 대추를 넣어 단맛과 영양을 더합니다.

포인트

  • 후추가 생강의 진저롤 흡수를 도와 효능을 극대화합니다.
  • 대추 속 비타민C와 꿀 속 천연 당분은 면역력 보강에 도움이 됩니다.
  • 아침 공복이나 취침 전에 마시면 체온 유지와 숙면에도 유리합니다.

 

후추 된장국

효능: 장 건강 증진 · 대사 촉진 · 체온 유지

재료 (2인분)

  • 다시마 육수 600ml (다시마 5×5cm 1장 + 물)
  • 된장 2큰술
  • 통후추 또는 분쇄 후추 ½작은술
  • 두부 ½모(작게 깍둑썰기)
  • 대파 1대(어슷썰기)
  • 표고버섯 2개(슬라이스)
  • 청경채 또는 시금치 少량 (선택)

만드는 법

  1. 육수 내기: 물과 다시마를 넣고 끓기 직전 불을 끄고 10분간 우려냅니다.
  2. 된장 풀기: 된장과 다시마 육수 2국자를 그릇에 덜어 된장이 풀어지도록 잘 섞습니다.
  3. 재료 넣기: 된장 푼 육수를 냄비에 다시 붓고, 두부·버섯을 넣어 중불에서 3분간 끓입니다.
  4. 후추 추가: 불을 끄기 30초 전에 후추를 넣어 향이 날아가지 않도록 합니다.
  5. 마무리: 대파와 청경채를 넣고 가볍게 저은 뒤 불에서 내립니다.

포인트

  • 후추의 피페린이 된장의 유산균 흡수를 돕고, 장내 유익균 증식에 기여합니다.
  • 체온 유지 효과로 특히 아침 식사나 저녁 식사 대용으로 좋습니다.
  • 육류 반찬과 함께 곁들이면 소화 촉진영양소 흡수가 더욱 잘 됩니다.

 

후추 생강 닭고기 볶음

효능: 소화 촉진, 면역력 강화, 체내 독소 배출

재료

  • 닭가슴살 200g (얇게 썬 것)
  • 생강 10g (채썬 것)
  • 후추 ½작은술
  • 마늘 2쪽 (다진 것)
  • 청경채 100g (손질한 것)
  • 간장 1큰술
  • 올리브유 1큰술
  • 꿀 1작은술 (선택)
  • 고추 1개 (선택)

만드는 법

  1.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과 생강을 볶아 향을 낸 뒤, 닭고기를 넣고 중불에서 볶습니다.
  2. 닭고기가 반 정도 익으면 후추와 간장을 넣고, 잘 섞이도록 볶아주세요.
  3. 청경채와 고추를 추가해 함께 볶아가며 익히고, 꿀을 넣어 단맛을 더해도 좋습니다.
  4. 모든 재료가 골고루 섞이고 익으면 불을 끄고, 접시에 담아냅니다.

포인트

  • 생강은 소화를 돕고 후추는 신진대사를 촉진하여 다이어트와 소화에 효과적입니다.
  • 청경채와 함께 먹으면 체내 독소 배출을 돕고, 혈액 순환에도 도움이 됩니다.

6. 마무리 – 향신료 속에 담긴 중세의 건강 철학

중세 영국 왕실의 향신료 보관실은 단순히 부를 과시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고, 계절의 변화에 맞서며,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한 지혜가 담겨 있었습니다.

오늘날 향신료는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 안에 숨겨진 인류의 오랜 경험과 의학적 지혜를 다시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향신료는 단순히 음식의 맛을 더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식탁을 건강과 철학이 담긴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