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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음식 탐구

유럽 궁정의 ‘향수 대신 먹는 허브’ 문화

by 선식담 2025. 4. 22.

– 몸 안에서 향기를 풍기는 비밀, 허브를 먹다

오늘날 우리는 향수를 뿌리며 몸에서 좋은 향이 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향수보다 더 깊고 은은한 방법을 즐기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유럽의 궁정 귀족들입니다. 그들은 겉에 바르는 향수보다, 몸 안에서부터 향기를 발산하기 위해 허브를 직접 섭취했습니다. 아름다움은 피부 깊숙이, 아니 소화기관부터 시작된다는 철학이 있었던 것이죠.

향기로운 몸을 위한 허브 식문화

18세기 유럽,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 궁정에서는 라벤더, 타임, 레몬밤, 로즈메리, 세이지 등의 허브를 잼, 차, 설탕절임, 시럽 등으로 만들어 식후 디저트처럼 즐겼습니다.
이 허브들은 단지 향긋함을 위해 선택된 것이 아니라, 소화 개선, 기분 안정, 체취 관리 등 다면적인 건강 효과를 고려한 선택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좋은 향은 외부에서 뿌리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피어나는 것.”

궁정에서는 잼으로 만든 라벤더를 토스트에 바르고, 차로 우린 레몬밤을 식후에 마시는 일이 일상이었죠.


현대 영양학의 시선으로 본 ‘먹는 허브’

이러한 허브들은 지금도 널리 알려진 항산화 식품입니다.

  • 레몬밤 (Melissa officinalis): 스트레스 완화와 기억력 향상, 소화기 계통 안정에 도움을 줍니다. 특히 신경성 체취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 타임 (Thymus vulgaris): 강력한 항균 효과가 있으며, 위장 내 가스를 줄이고 호흡기를 맑게 해줍니다. 타임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입냄새 개선에도 효과적입니다.
  • 라벤더 (Lavandula spp.): 불면증 개선, 심신 안정, 생리통 완화, 그리고 체취 관리까지 전방위적으로 작용하는 허브입니다.

현대 연구에 따르면, 이들 허브는 장 건강을 향상시키고, 장내 미생물 균형을 조절함으로써 몸에서 나는 자연스러운 냄새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좋은 향이 나는 음식’이 아닌, 몸속 환경을 바꾸는 식품으로 허브를 다시 보게 만드는 근거가 됩니다.


인문학적으로 바라본 허브와 ‘향기의 철학’

중세 유럽은 위생 시설이 부족했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청결과 향기에 대한 욕망은 더욱 커졌습니다. 특히 귀족층은 외부의 냄새를 감추기 위해 향수를 사용했지만, 더 나아가 ‘내면에서 발산되는 향기’를 통해 교양, 건강, 세련됨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라틴어로 ‘향기롭다(fragrant)’는 말은 도덕적·정신적 고결함과도 연결되었고, 실제로 종교적 의식이나 왕실의 접대에서 허브 향은 고귀함을 상징했습니다. 먹는 허브는 향기뿐 아니라 지적 교양과 건강을 갖춘 사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약선요리로의 응용 – 몸 안의 향을 디자인하다

한방에서 허브에 해당하는 재료는 ‘향신약’으로 분류되며, 대부분 기(氣)의 흐름을 도와 소화, 순환, 정서 안정에 도움을 줍니다.
예를 들어 라벤더는 심신 안정과 간기울결 해소, 타임은 폐기 순환과 진해 거담, 레몬밤은 심비양허(心脾兩虛) 완화에 사용됩니다.

이러한 효능은 현대의 허브티, 허브잼, 허브청, 허브젤리 등으로도 충분히 응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약선요리 예시는 실생활에 바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레몬밤 오미자청

  • 간기순환과 스트레스, 신경안정을 동시에 다스리는 향기로운 건강청
    레몬밤은 유럽에서는 ‘멜리사(Melissa)’라고도 불리며, 중세부터 신경 안정제로 사랑받던 허브입니다. 상큼한 시트러스 향이 특징이며, 불안과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숙면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레몬밤과 오미자를 함께 우려 만든 청은 향긋함과 깊은 맛을 동시에 가지며, 정신적 긴장을 완화하고 간의 순환을 도와주는 약선 음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오후 시간대의 피로회복용으로 제격이에요.
  • 오미자는 한의학적으로 간기울결(肝氣鬱結), 즉 스트레스로 인해 생기는 소화불량, 분노, 우울 등의 증상에 자주 쓰이는 약재입니다. 다섯 가지 맛(신맛, 단맛, 쓴맛, 매운맛, 짠맛)이 모두 들어 있어 ‘오미’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간 기능 개선, 항산화, 면역력 증진에 효과적이죠.

만들기

재료

  • 건조 레몬밤 잎 10g (또는 생잎 한 줌)
  • 건조 오미자 50g
  • 꿀 또는 비정제 설탕 200g
  • 정제수 500ml

만드는 법

  1. 오미자는 미지근한 물에 살짝 씻은 후, 물 500ml에 넣고 약불에서 15분간 끓입니다.
  2. 불을 끄고 레몬밤을 넣어 10분간 우립니다.
  3. 체에 걸러 우린 물만 따로 담고, 식힌 뒤 꿀이나 설탕을 넣어 잘 섞습니다.
  4. 유리병에 담아 냉장 보관 후, 하루 1~2잔씩 물 또는 탄산수에 희석해 음용하세요.

  라벤더 유자젤리

  • 소화를 돕고, 심신진정, 식후 입냄새와 체취까지 가볍게 덮는 디저트
    라벤더는 긴장 완화와 항염, 항균 작용으로 유명하며, 중세 유럽에서는 귀족의 욕조와 음식, 차, 디저트에 빠지지 않고 쓰였습니다. 향기만으로도 진정 효과가 있어 ‘천연 진정제’라 불리곤 했죠.
  • 유자는 비타민 C가 풍부하고 소화 효소가 함유되어 있어, 식후 소화 보조제 역할을 하며, 특유의 상큼한 향은 입안의 불쾌한 냄새를 없애는 데에도 탁월합니다.
  • 라벤더와 유자를 섞어 만든 젤리는, 입 안 가득 은은한 꽃향과 상큼함을 퍼뜨리며, 식사 후 입냄새와 체취 완화에 도움을 줍니다. 디저트이지만 단순한 ‘단맛’이 아닌, 건강한 마무리를 위한 후각과 위장의 정화제 역할을 해요.

재료

  • 식용 라벤더 꽃잎 1작은술 (또는 티백 1개)
  • 유자청 3큰술
  • 젤라틴 5g 또는 한천가루 3g
  • 물 300ml

만드는 법

  1. 물 300ml를 끓이다가 불을 끄고 라벤더를 넣어 5분간 우리고 걸러냅니다.
  2. 우린 라벤더차에 유자청을 넣고 잘 섞습니다.
  3. 따뜻한 상태에서 젤라틴(또는 한천)을 넣고 완전히 녹인 뒤, 틀에 부어 냉장 보관합니다.
  4. 2~3시간 후 굳으면, 티타임 디저트로 즐기세요.

 타임 버터잼

  • 고기 소화 보조, 항산화력 강화, 향기 나는 지방 대체품 잼
    타임은 고대 로마와 그리스에서 ‘용기와 정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향신료로도 의약으로도 광범위하게 쓰였습니다. 특히 타임 속 티몰(Thymol) 성분은 강력한 항균, 항산화 효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 고기와 함께 먹을 경우, 타임은 지방 산화를 억제하고, 육류의 노폐물 축적을 줄이는 역할을 하며, 맛 또한 잡내를 없애주어 궁합이 탁월하죠.
  • 버터에 타임을 숙성시켜 만든 타임 버터잼은 아침 식사의 토스트용 잼으로도 훌륭하고, 스테이크나 구운 고기에 곁들여 먹을 때 풍미를 더하고, 위장에 부담을 덜어줍니다. 항산화 보조제로서도 기능하며, 특히 중년 이후 고기 섭취 시 건강한 선택지가 될 수 있어요.

재료

  • 무염 버터 100g
  • 신선한 타임잎 1~2줄기 (또는 건조 타임 1작은술)
  • 소금 약간 (선택)
  • 꿀 1작은술 (선택)

만드는 법

  1. 버터를 실온에서 말랑하게 만든 후, 잘게 다진 타임잎을 넣습니다.
  2. 꿀과 소금을 취향에 맞게 넣어 섞습니다.
  3. 뚜껑 있는 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하세요.
  4. 구운 빵, 고기, 감자요리 등과 함께 즐기면 풍미가 배가됩니다.

이러한 요리들은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몸속 향기와 건강을 디자인하는 약선 디저트라 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 향수 대신 식탁 위의 향기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몸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허브의 향기. 이는 고대 궁정 여성들이 누리던 내면의 사치이자 건강의 표현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허브를 먹는 이유도 단지 ‘기분 전환’이 아니라, 몸의 균형과 향기, 감정의 안정을 위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먹느냐’는 곧 ‘어떤 향기를 풍기며 살 것인가’와도 이어집니다.
당신의 향기는 향수병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식탁에 있다는 사실.
바로 지금, 한 잔의 허브차에서 시작해보세요.